생산과 창작의 경계

김정현 <미술비평>

박희자는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그가 2015년 체코의 예술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자신에게 주어진 타지의 낯선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탐구하며 시작된다. (2015-2017)에서 작가는 작업실을 수술실이나 공장 내부에 비유하며, 아름다움과 추함을 질문하는 공간이자 창작의 과정에 수반되는 폭력적인 공정을 드러내는 이중적 장소로서 묘사한다. 그는 작업실 안에서 예술과 일상, 예술작품과 사물이 우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공간으로서의 장소성을 드러내고 그곳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사물들에 각각의 독립성을 부여한다.

귀국 후, 작업실의 공간과 사물들을 지각하는 작가 특유의 시선은 을지로의 상가들로 옮겨간다. 설립 당시 최초의 주상복합단지이자 7-80년대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세운상가는 슬럼화 및 90년대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면서, 현재는 상당수의 기술자와 공구상들이 떠나갔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인테리어·조명 상가 역시 싼값에 제조한 디자인 복제품을 유통·판매하는 곳으로 변모되었으나, 여전히 그 곳에 남은 일군의 전문가들이 제조업의 중심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을지로 상가를 배경으로 제조업에서의 ‘생산’과 예술에서의 ‘창작’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 박희자는 지난 공;간극에서 선보였던 <사물이탈>(2018) 설치물을 촬영하여 사진으로 선보인다. 을지로의 상가들을 돌며 수집한 폐산업재료들을 정물 오브제로서 촬영하고 이를 미완성 프레임에 설치함으로써 사진을 독립적인 작품이자 설치물의 일부분으로 작동되게 하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큐브의 전시 공간으로 들어오기 위해 프레임을 씌워 전통적인 정물사진으로서 제시한다.

<경치의 오브제> 시리즈(2018)에 등장하는 사물과 대상들은 공통적으로 한 공간에서 계속 사용되면서, 그 나름의 역사와 기능을 지니고 그(것)만이 지니는 존재 의미를 생성한다. 그것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누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 현재의 풍경이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매일의 일상이 덧입혀져 사물은 마치 스스로 그 자리를 찾아 그곳에 꼭 들어맞게 놓인 듯하고, 이제는 각각의 사물들이 놓인 그 상태 그대로가 완전한 풍경과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특히 <경치의 오브제_100세 클럽 회장>은 긴 세월 동안 을지로에서 생활하며 이미 그곳의 한 풍경으로, 그리고 오브제로 자리매김한 100세 클럽 회장의 초상을 담아낸다. 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너무나도 익숙하게 꼭 들어맞는 팔토시와 작업복은 그가 작업장에서 보낸 시간과 그의 전문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 자체로 을지로 상가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시리즈(2018)에서 작가는 상가들에서 버려진 타일, 아크릴 조각, 와이어, 브러시, 전기콘센트 등을 수집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들의 형태, 색채, 재질 등에서 조형미를 발견하고, 이를 정물 사진으로 재탄생시킨다. 매일 생산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버려지는 사물들이 지닌 가치를 다루는 작가는 생산과 창작의 과정이 지니는 공통의 유희를 발견한다. 을지로의 상가에서 쉽게 접하는 생산자의 행위들을 재현한 <퍼포머> 시리즈(2018)에서 퍼포머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산자의 장갑을 끼고 수레, 집게, 의자, 철사 등을 사용하여 일상적·반복적이면서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행위들을 선보인다. 분명 생산자의 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예술성을 획득하는 퍼포머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생산과 창작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수 있을까. 작가는 이번 전시명이자 반복노출을 통해 하나의 사진에 여러 장면을 겹쳐내는 사진 기법인 “다중노출”을 은유적으로 취하여, 생산과 창작이 맞닿아있는 지점을 드러내고 그 두 장면이 겹쳐 발현되는 제작(make)의 가치를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제시한다.

# 본 글은 송은아트큐브 전시의 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