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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영역에 대한 사진 행위

이단지 <큐레이터>

마치 촬영을 위한 세트로 보일 만큼 깨끗이 정리된 집 안은 투명하고 환한 볕이 들고 있다. 사진가가 찍은 여성들은 그들의 거실과 침실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지만 한편 공허하고 불안하다. < The Woman of Island >의 공간은 방호(防護)이면서 동시에 고립의 방이 될 수 있다. 사진 속 인물에게 다가가보자. 우리는 대상의 얼굴보다 정지된 신체에 몰입한다. 카메라에 대한 무관심과 무기력의 태도는 우리에게 그들의 얼굴 표정 대신 신체와 제스츄어를 관찰하게 한다. 혼자 있을 때와 다름 없는 일상의 옷차림, 꾸미지 않은 맨 얼굴, 맨 발이 드러난 의도 없는(저항하지 않는) 신체는 주체의 상실감을 배가한다. 권태로운 여성의 신체는 석고를 부어 만든 조각상 같기도 하다. 무심히 서 있는 모습, 돌아 누운 포즈와 정지된 듯 잦아든 호흡에 기대나 의욕과 같은 “드라마”는 없다. 소파와 침대, 옷장과 커튼 등, 집 안에 자리한 단촐한 사물들처럼 흔히 전통적인 여성의 사진에 기대하는 도발과 호소는 없다. 작가는 ‘서른 즈음의 여성에게 찾아오는 삶의 정체감과 감정적인 무기력의 상황’을 사진으로 담고자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권태”라는 타인의 사적인 감정을 어떻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을까?
이러한 정서적인 순간을 만나기 위한 과정은 여성들을 수소문하고 그들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로 시작된다. 앞서 이 시리즈의 공간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이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그들의 ‘집’은 방호에 가까운 사적인 장소이다. 사진가의 관심이 단지 전적으로 모델에 대한 시각적인 결과가 아니라 감정과 정서적인 순간의 포착에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공간(감정)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 촬영자와 마찬가지로 이 행위에 참여한 모델들에게도 낯선 타인에게 본인의 공간을 노출하고 사진을 찍게 한다는 것은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부터, 즉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들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일상의 리얼리티와 그것을 찍는다는 “사진 행위”는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참여자인 모델에게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위계를 맡겨야 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촬영의 목적을 미루고 대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가깝지 않았을까. 관계가 전환되는 이 과정에서 사진가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보다 더욱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여성들이 뒤를 돌아있거나 렌즈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며 고립되거나 위축된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졌다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관음증적인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감추고 싶은 내면의 불안을 들춰내게 된다. 동시에 모델이 자신이 편한 포즈를 선택했다는 부분에서 이 “사진 행위”의 중요한 주체적인 저자성의 일부가 대상 자체의 신체로 던져졌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 The Woman of Island >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작가와 나이가 비슷한 30대 여성들이기에 설득과 공감의 과정은 생각보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사진이 포착하고 있는 권태를 단순히 여성의 사회적인 위치를 대입하여 소외의 문제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감정은 보다 복잡하고 예민한 사적인 영역이기에 작가에게도, 모델에게도, 같은 30대 여성이라는 입장의 상대는 그것의 노출을 용인하며 가까운 심리적 거리를 가져다 주는 동질감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한편 본 작업의 전작 < When Love Comes >시리즈에서 사진가는 또 다른 장소를 찾았다.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가장 사적이고 찰나의 공간인 여인숙이다. 깔끔히 정리된 텅 빈 여관방의 풍경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이 시리즈는 장소를 빌어 과거를 현재로 붙잡기 위한 사진가의 개인적인 시도로 출발한다. 존재는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더욱 강력해진다. 본인의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촬영한 사진들은 만질 수 있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사랑,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왕복한다. 작가는 “각자의 경험 속에 있을 법한 허름한 여인숙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해 보고자”했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여인숙’이라는 장소에 대한 텍스트적 단서 없이는 샤워 가운과 새 장식물, 화분 등을 찍은 타이트샷이 다소 일상적인 오브제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기에 관객에게 목적과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이나 이야기 줄거리 없이 아련한 상실감의 “사랑”과 그것의 허구에 대한 끊임 없는 혼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보다 조악한 인테리어의 리얼리티에 집중하는 것은 어땠을까. 다만 시각적으로 화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이 시리즈는 실제 성 매매 업소로 쓰였던 텍사스 촌의 한 건물(성북구 하월곡동 88–290번지_텍사스프로젝트 ’19개의 방’)에서 소개되었다.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관념과 상당히 대비되는 그 곳과 사진 이미지의 주고 받음 가운데 이중적인 의미 발생이 흥미로웠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박희자의 대부분의 사진 작업에서 “장소”는 존재와 부재의 매개이거나 정서를 전달하는 사진 행위의 현장, 또는 사진과 그것이 놓이는 장소와의 맥락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발동한다. 성북동의 <오래된 집>에서 진행 된 < Red Rose Chain >은 70년의 세월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집을 개조한 갤러리 공간에서 촬영과 전시가 병행되었다.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 소설과 동명의 전시는 역시 서두에 이야기한 < The Woman of Island >와 같이 일반인 중 자원자를 찾아 갤러리이자 누군가의 집이었던 공간에서 촬영된다. 사진가는 여성 모델들에게 의자, 방석, 담요 등 같은 크기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모델들은 움직이기도 좁은 공간, 주어진 자신의 자리 위에서 정적인 포즈를 취한다.
“오래된 집 마당에 앉아 텅빈 집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주로 이곳에 살았을 사람을 희미하게 그려보았다. 방에서 거실로, 부엌에서 안방으로 좁게 이어지는 공간 안에서(…) 오히려 더 방문을 걸어 닫지 않았을까… 이번 작업은 온전히 오래된 집에 머무는 동안 나의 현실의 심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슷한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우리에게서 보여지는 차이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보고 싶었다. 책상만 놓여도 움직일 곳 없을 것만 같은 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들이 무기력하면서도 신경질 적으로 드러나길 바랬다.”_< Red Rose Chain >의 작가노트 중

성북동 오래된 집에서의 설치는 벽에 걸지 않은 사진을 바닥과 벽에 기대어 적당히 놓아두는(place) 구조로 진행되었다. 통상적으로 사진의 액자 프레임은 사진 뒷면에 판넬을 대어 사진을 지지하여 프레임을 만드는 반면 해당 시리즈는 판넬 대신 투명한 유리를 앞 뒤로 대고 인화된 사진을 놓음으로 액자가 놓인 전시장 공간이 사진 너머로 겹쳐 보인다. 이렇게 놓여진 사진의 물질성은 실제 촬영이 진행 되었던 같은 공간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사진 기록의 한시적인 특징을 극대화한다. 작업이미지에서 찾기 힘든 시간적 개념은 오히려 그것이 멈춘 듯 역설적인 사진 안 밖의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고 부유한다. 언급한 작가의 대부분의 작업에서는 대상의 심리적 문제와 그들과 나눈 인터뷰, 대상이 점유하는 장소에 대한 설명이 늘 따라오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또 다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매체적 관점에 내재된 문제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심리적 상실의 흔적을 사진 행위로 만든다는 일에는 동반되는 대상과의 집요한 소통이 요구된다. 삶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사진이 ‘무엇’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수사(rhetoric)의 문제를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